되어 우리 민족과 국토가 남북으로 갈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곧이어 북한지역은 소련군의 점령정책을 통해 공산화되었다. 우선 북한지역의 소비에트 화는 각 도인민위원회(道人民委員會)를 조직하여 일제로부터 접수한 행정권을 인계받아 행정의 공백을 메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년 6월에 고종의 윤허를 받은 것이 선교사업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사업이었다는 사실로서도 짐작할 수 있다. 선교사들은 선교의 한 수단으로 교육에 먼저 착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업은 칼빈(J. Calvin)이나 녹스(J. Knox)가 표현한 "교회 옆의 학교"라는 말이 조선에 있어서는 "학교 옆의 교회"라는
기독교를 조사함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하고, 또한 현실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하려 하였다. 이를 위해 기독교의 한 분파인 순복음교를 조사하였고, 11월 13일 조원들과 여의도에 있는 순복음 교회를 다녀왔다. 우리 조가 참관했던 종교 집회는 일요일마다 열리는 예배였다
총회는 총회장으로 배은희, 부총회장에 함태영을 선출하였다.
1947년 4월 대구제일교회에서 개최된 제 2차 남부총회는 1942년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해체되었던 장로회 제 31회 총회를
계승하여 제 33회 총회로 개회하였다.
이것은 1943년에 조직된 친일적인 일본기독교조선 장로교단을 부인하고 그 이
년 게일 (J.S.Gale) 목사가 교장이 되면서는 구세학당이라고 이름 하였고, 그 뒤 발전을 거듭하여 경신학교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하였다.
Ⅱ. 장로의 개념
장로교회에 "장로"라는 호칭이 있는데 이 호칭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출 3:16; 눅 22:66; 행 22:5). 장로라는 말은 본래 "연장자(年長者) 또는 "
노회를 재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결국 1945년 11월 경남노회가 재건되었고 12월에는 전북노회가 재건되었다.
통일의 여망 때문에 남한교회만의 조직인 남부대회가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도 어려웠다.
해방 직후 월남한 이북 출신 교역자들도 남쪽 교회만의 총회 구성을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남부대
기독교 분열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고 개화기, 일제시대, 6.25, 군사독재와 경제성장, 민주화 등의 한국 역사를 거치면서 한국의 교회는 경이로운 성장을 보여 왔다. 세계 선교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부흥과 교회성장은 한국 기독교의 자
기독교)라는 책이다. 이 책은 김재준 목사님의 업적과 사상을 알 수 있고 그를 평가한 내용이다.
저자 김경재 목사는 이 책은 장공의 일생을 통시적으로 조명하면서 독자들이 한국개신교사 및 사회사속에서 갖는 의미를 함께 음미하기를 권유한다. 저자는 지난 50∼60년까지의 시기를 다룬 장 ‘복음의
교회의 교권은 분열되고 있다. 이러한 난제 속에서 해원의 목회자적 삶은 모든 역경을 견디고 이기는 삶의 비결이었다. 그이 목회자적 삶은 순창노회에서 목사로 목사 시취에 응시하게 되어. 광동중앙교회에서 초년 목회의 정열을 불태웠고, 고흥읍교회를 거쳐 광주 중앙교회에서 정년을 맞이하였다.